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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외계 / 2008-07-21   +


오늘은 책사는날, ㅎㅎ 잠깐 들렀어.^^
나 오늘 황당한..경험을. ㅜㅜ 어의없었음...생각하기도 싫음.
나 담력좀 키우고 싶어..ㅋㅋㅋ ㅠ


7. TO GO / 2008-07-15   +
사진 감사했습니다 ^^

모모 글쓰시는 분이 스캔들 각색했던
분이라는데.. 느낌이 좋았어요 ㅋ

6. 외계 / 2008-07-13   +
하이! 잠자기 전에 잠깐 들렀음!!!
ㅎㅎㅎㅎㅎ
오늘도 무척 덥구나.전시회준비로 분주하겠구나~
좋은 작품으로 좋은얼굴로 보길 바란다.
잘자 진!

>ㅅ<
5. 지민 / 2008-07-10   +


응~~ㅎㅎ^^
메일 기다리고 있어. ㅋ 어제도 확인 해봤다는. ㅋㅋ 나 열정있지? 막 이래..ㅋㅋ
방금, 버섯부침을 먹었어. 배불러. ㅋ
4. 지민 / 2008-07-09   +


진아 그림 넘 넘 좋다. !! 정말.....
나 팬할래~ ㅋㅋ
날로 날로 좋아진다.
ㅎ ㅎ

3. 석진 / 2008-07-06   
<언어의 예술> - 이석영

제 4부 대 화

1. 대화에 관한 작은 생각1)

1) 대화에 관한 몇 가지 견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1905~1980)는 그의 [출구 없음](1943)이라는 희곡에서
"타인(他人)은 나의 지옥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언뜻 보면 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말로 해석된다.
즉, 타인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지만, 바로 그 타인이 자기 인생을 망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대화로 인한 인간관계가 서로를 해칠 때, 각자는 서로에게 지옥과 같은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대화의 역기능을 고발하는 것으로도 해석이 된다.

이 희곡 내용을 조금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장면은 지옥이다. 거기에는 남자 한 명, 여자 두 명이 방에 갇혀 있다. 그들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서로
말을 건다. 바로 이 모순된 장면이 이 극의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이들 세 사람은 서로 말을 거는 한은 살아 있지만, 각기
제 나름대로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따라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
말을 한다. 그들은 오직 타인을 괴롭히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느낀다. 그들은 상대를 파괴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파괴한다.
자기 스스로의 존재의미가 없으므로 영원히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희곡은 부조리한 인간상황(人間狀況)에 관한 사르트르식의 고발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참으로 사는 것'과 '겉보기로만 사는 것'을 대조시키고 있다. 참으로 사는 사람은
상대에게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기를 내보이지만, 겉보기로만 사는 사람은 역(逆)으로 우선
타인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관심을 두고, 남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꾸민다는 것이다.
거짓으로라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다.

부버에 의하면 '대화'는 '타인과 마주보는' 일이다. 타인과 마주본다는 것은 관심을 상대의 말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상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상대에게 투신하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자기에게 틀어
박힌다라는 것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비친 상대방의 이미지만을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타자와 마주하려는 데 반하여, 후자는 타자를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타인과 마주보는'일은 비록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눈앞에 실존하고 있는 존재로서 승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성적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체의 행위인 것이다.


세계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양면적이다. 세계를 맞이하는 사람의 몸가짐이 양면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근원전(根遠的)인
말은 두 가지이며 사람의 몸가짐은 여기에 맞추어져 있다.


'근원적인 말은 홀로 있는 낱말이 아니라 어울려 있는 낱말이다. 근원적인 말 가운데 하나는 복합어 '나-너'이고 다른 하나는 '나-그것'
이다. 이 경우 '그것'의 자리에 '그 사람'이나 '그녀'를 대치시켜도 그 의미에 변화는 없다.
이와 같이 근원적인 말이 둘일 때는 사람의 '나'도 두 겹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말 '나-너'에 있어서의 '나'와 '나-그것'에
있어서의 '나'는 서로 그 의미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중략)
'나'그 자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다만 근본적인 말 '나-너'에 있어서의 '나'이거나, '나-그것'에 있어서의
'나'는 서로 그 의미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중략)
'나' 그 자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다만 근본적인 말 '나-너'에 있어서의 '나'이거나, '나-그것'에 있어서의
'나'뿐이다. 다시 말해, '나'라고 말할 때 사람은 '나-너'의 나이거나 '나-그것'의 나이거나 그 둘 중의 어느 하나가 되는 것이다.
-부버,[나와 너]




대화의 단절에 관해서 깊이 연구한 바 있는 카를로스 피노(Carlos C.derpino,1922~ )는 대화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람은 사회적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관계를 맺는다. 물론 대화의 방식도 달라지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사회적 측면에서는, 예를 들면
계층 간의 차이와 간격에 따라 대화의 성립이 어렵게 된다. 노동자와 고용주는 서로의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차원의 말을 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측면에서는 예를 들면 부버가 말하는 '존재 확인'의 욕구를 사회적 위치가 다르면 충족시킬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같은 상황에 의한 욕구 불만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치명적인 단절을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



이상의 비교를 통해서, 사르트르는 왜곡된 대화의 모습을 통하여, 올바른 관계의 파괴, 나아가 자신과 타인에 대한 파괴를 고발하는
반면에, 부버는 사람 사이의 올바른 만남과 대화, 그로 인한 창조적 의미에서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또한 카를로스 피노는 사회적
위치가 대화를 단절시키는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요컨대 자신을 스스로 격리시키거나, 사회적 거리감을 극복하고 '나'와 '너'가 근본적으로 교감하는 대화가 전혀 없다면, 참으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또한 그것을 통해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 대화의 길


사람은 자기 마음속의 잡음(雜音) 때문에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잡음은 주의가 산만한 경우에 생길 수도 있고 신경
쓰이는 일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도 있다. 주의 산만이란 자신의 내면적인 부족을 잊기 위해서 주변의 사물로 자신의 마음을 채우려는
욕구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이 싫거나 두려워하고 있는 경우에는 진실을 구하지는 않고 신기한 것만을 구하게 된다.
비록 잡음 없이 밖의 소리가 잘 들려온다고 할지라도 그냥 듣는 것과 귀담아 듣는 것과는 또 다르다. '들려 옴'이란 타인의 목소리가 포착되는
것이고, '귀담아 들음'이란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귀담아 듣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자기를 제쳐놓고 상대방이 하는 말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기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의 사물 관찰 방법을 제쳐놓고 상대방의 사물 관찰 방법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다. 귀담아 듣는다는 것은 마치 자기가 상대방이 된 것처럼, 그러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잃지 않고 상대방의 세계와 접촉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귀담아 듣는다 해도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여기서 말하는 '행동'이란 신체적 움직임이라는 좁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변화한다'는 넓은 의미에서이다. 참된 대화의 한 가지 뚜렷한 증거는 대화를 통해서 양자가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귀담아 듣고도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대개의 경우 자기 상실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를 거부한다.

참된 대화에서 귀담아 듣는다는 것은 또한 사물을 관찰하는 방법을 상대의 그것으로 바꿈으로써 내면에서 사고의 '역할'을 맡는 관점을 바꾼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때그때 주변 상황에 대처해서 변화의 흐름을 탄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대화의 의미


대화라는 주제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대화가 '지금'행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괴로워하거나 웃거나 졸리거나 도망치고 싶어지거나
하는 것은 '지금'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나 미래를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에 산다는 것은 오직 현재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 산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지금' 경험함을 말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현재가 없다면 과거도 미래도 없다는 것이다.
나의 과거란 객관적인 과거가 아니라 내 안에서 지금 살아 있는 과거이다. 나의 미래란 내 안에서 지금 상상되고 있는 미래이다.'지금'을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사소한 것 같지만 대화를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화가 '흐른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고 동시에 상대방에게서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떨어져서 흐르는 것도 아니고 거꾸로 상대방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상대와 함께 이루면서 더불어 흘러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없이 드러내지만, 그것은 상대방과 경쟁하거나 압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게 흘러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감정은 다양한 가치에 대한 반응이므로 그냥 반응으로 받아들일 뿐, 자기의 감정에 정신을 파는 일로 대화의 '흐름'을 멈추게 하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필요한 일은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상상하고 상대방이 느끼고 있는 바를 감지하는 일이다.
대화를 함에 있어서 아무리 내가 상대방과 마주하고 싶어 해도 상대방이 자신을 나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나는 그와 마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마주하려는 그의 의지는 나에게는 일종의 은혜이다. 은혜는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지만 의지만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한다. 아무리 은혜의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해도 내가 상대와 마주하고 싶지 않으면 그와 마주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는 '나의 의지가 상대방에게는 은혜이고, 상대방의 의지도 나에게는 은혜이다.

결국, 대화는 반드시 '상호적(相互的)'인 것이다. 상호적이 아닌 대화는 단순한 말을 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상대방에게 말을 걸고
상대방을 향하여 열어 놓고 있는데, 상대는 나에게 응답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대화가 없다. 서로 관계하는 각자에게 물음이 답이 되고 답이
물음이 될 때 대화가 성립한다. 상대방의 응답이 내 존재에 물음을 던지고 내 응답이 상대방의 존재에 물음을 던진다. 방향은 비록 다를지
몰라도 대화는 함께 흐르는 것이며, 더불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4) 대화의 자세


심리학 분야에서 로저스(Carl R. Rogers, 1902~1987)의 대화의 태도에 관한 견해를 살펴본다. 그는 약 30여 년에 걸쳐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태도',즉 '상호 보완적(相互 補完的) 관계의 성립을 촉직하는 태도'에 관해서 연구하고 대화의 태도에 관하여 다음 세 가지 지침을 제시했다.

첫째는 '성실성(誠實性)'이다. 이것은 자기에 대해서 정직하고 상대에 대해서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에 대한 정직이란 자기가
체험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지각(知覺)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에게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정직이란 자기의 감정을
경험하는 그대로 타자에게 전달하는 것인데, 그것은 자기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아니라 타자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부정적 감정의 경우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상대에게 상처를 주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심화(深化)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무조건적 수용'이다. 이것은 타자의 단점이나 결점에 대해서 모르는 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같은 수용은 평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조건적(無條件的)인 것이다.

셋째는 '내적 이해(內的 理解)'이다. 내적 이해란 상대의 사고(思考)나 감정의 세계에 파고들기 위해 시도하고 그 세계를 마치 자신의
세계처럼 느끼려고 노력하는 데서 오는 이해이다. 그렇다고 상대방과 일체화(一體化)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거리를 둔다. 이 거리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 필요한 거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관심의 거리가 아니라 존경의 거리이며, 자신의 개성을 잊지 않고 서로 접촉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이다.





5) 대화의 모형


구현정(2002)에서는 음성언어와 동작언어를 논하는 과정에서 화자의 심리상태와 음성언어 그리고 동작언어가 일치되느냐 일치되지 않느냐에
따라서 전자를 단선적 대화 모형, 후자를 복선적 대화 모형으로 나누고 있다.
먼저 복선적 대화는, 대체로 자존감이 낮으며, 자신이 없고, 열등감이 강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남에게 잘 보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음성언어와 동작언어가 다르게 나타나게 되어 이중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복선적 대화 모형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가 '회유형'으로 대화에서 무슨 일이건 상관없이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하고,
사과하고, 결코 반대하지 않는 형이다. 여기에 속하는 사람은 자기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며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
들에게서 나타난다.

둘째는 '비난형'으로 내면적으로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고, 소외감을 느끼는 자의식을 지니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남의 결점만 찾아내고
스스로는 아주 높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특성을 지닌다.

셋째는 '계산형'으로 내면으로는 자신감 결여로 자기보호에 급급하지만 겉으로는 대단히 이성적이고 냉철하며 차분한 듯이 표현하는 부류이다.
특히 아무에게도 상처 받고 싶지 않다는 자기 방어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타입이다.

넷째는 '혼란형'으로 자신감이 없고 열등감이 강해서 어수선하고 침착하지 못하며 목소리는 단조롭고 말의 내용과 조화가 되지 않는 부류가
여기에  속한다.

한편, 단선적 대화는 대화상황에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에 음성언어와 동작언어가 분리되어 다르게 표현될 수가 없다.
동작과 감각, 생각, 감정 모두가 통일성 있는 전체로서 나타난다. 단선적 대화는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찬성하기
때문에 찬성하며, 반대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단선적 대화를 하는 사람은
머리, 가슴, 감정과 몸이 일치하는 총체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단선적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신념과 용기, 긍정적 자아관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단선적 대화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값있게 여기고, 전체적으로 느끼며, 창의성 있고, 정직하게 살 수 있다.
또한 단선적 대화를 통해서만 진정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왜곡된 관계를 바로 잡을 수가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상처를 받고 과도한 경쟁으로 열등감을 경험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감을 훼손하거나
소외감 또는 열등감을 자극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사람은 많고 나라는 작아서 특별히 경쟁이 치열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럴수록 스르로에게
정직하고 성실하며 세상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심성을 훈련하여, 겸손한 가운데 오히려 자신감을 키우고, 정중한 가운데 자존감을
높이는 건전한 생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단선형 대화를 하는 훈련을 쌓아야 할 것이다.
대화는 외면적 성공뿐 아니라 내면적 인격수양을 포함하는 모든 일의 성패를 결정하고,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가름하는 가장 소중한,아니
인생의 거의 전부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러한 훈련의 중요성은 무시 할 수 없을 것이다.
2. 나야. / 2008-06-26   +
진아.
ㅋ .그냥 들러봤어. 가끔 와... ㅎㅎㅎ
작업 열심히 해~~ !!! . . .

그림 피리부는 그림 넘 좋다. .. 내 눈에 꽃이폈어. ㅋㅋ

나 누군지 알지? ㅋㅋㅋ 외~~에~~~계~~~ ㅋㅋ
1. ㅂㄹ / 2008-06-20   +
1순?

밤새워 하햫게 눈쌓인 마당에 첫발 내딛는 느낌!

간만에 싸이 접했다가 미니홈피에 적힌 주소 보고 왔어요.

종종 들러 그림보고 갈게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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